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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로 본 인공지능의 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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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표 관리자 작성일2014-08-25 11:36 조회17,1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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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를 아직 안 보신 분은 이 기사를 읽지 않길 권합니다. 이 기사는 ‘그녀’ 내용을 전반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영화를 아직 못 본 분께는 강도 높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인터뷰한 내용을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영화 ‘그녀(Her)’를 봤습니다. 인공지능 운영체제(OS)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남자 시어도어의 이야기죠. 사랑과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시어도어가 사만다와 이별을 직감할 때 저는 지하철 계단에 주저앉은 시어도어와 함께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Her_Trailer_Screenshot_01

▲꺼억꺼억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뒤 눈가 물기를 닦아내다 ‘사만다 같은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모든 걸 이해하고 모든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비싼 밥 사줄 필요 없고 지루한 커피숍에 앉아 기다릴 필요 없는 인공지능 여자친구말이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바이오지능연구실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이충연 연구원에게 물었습니다.

안상욱 블로터닷넷 기자 : 사만다를 만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죠?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영화 속에선 2025년, 그러니까 10년 뒤에 사만다처럼 완벽한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정말 10년만 기다리면 될까요?

이충연 서울대 바이오지능연구실 연구원 : 아… 죄송하지만 기자님이 완벽한 여친을 만나긴 10년 안에는 힘들 것 같은데요. 비슷하게는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애플 시리가 발전한 형태로요. 예를 들어 시각 데이터를 모아서 사용자 기호를 파악한 다음에 추천해주는 거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많이 드시는데, 이 카페 한번 가보세요. 아메리카노는 여기가 나을 걸요”라는 식으로요.

사만다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사만다는 의식을 갖춘 인공지능이기 때문이에요. 이건 10년 안에 구현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사만다는 스스로 계속 생각하고, 묻고, 답을 구하잖아요.

의식 갖춘 인공지능, 10년 안에 나오기 힘들어

안상욱 : 맞아요. 처음 주인공 시어도어가 컴퓨터에 사만다를 설치했을 때 묻잖아요. “넌 이름이 뭐야?” 그러니까 사만다가 “아, 제가 이름이 필요하군요”라고 대답하죠. 그러고는 ‘사만다’라고 답해요. “이름이 왜 사만다냐”라고 물으니까 “발음이 마음에 든다”라고 하죠. 이 장면을 보고 무릎을 쳤어요. 진짜 인공지능이구나. 질문을 직독직해하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뜻을 파악해서 고민하고 대답하는 거잖아요.

이충연 : 저도 이 장면부터 영화에 흥미가 생겼어요. 일단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한 거고, 이 사람에게 출력값으로 이름을 던져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이런 게 지금 컴퓨터에는 없잖아요. 자기한테 없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음’으로 나오는데, 사만다는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찾는 거죠. 이름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하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데이터를 찾아서 원하는 값을 뽑아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이름을 골랐다는 거예요. 이건 아무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거거든요. 아마 개발자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데이터를 깔아뒀을 거예요. 어느 정도 지식과 기본 캐릭터 성격은 미리 개발돼 있는 거죠. 그래야 자기 기호를 가지고 이름을 고를 수 있으니까요. 이 뒤에 나오는 모든 장면도 마찬가지예요. 일정 상태에서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대화하면서 계속 발전하잖아요. 그러려면 기본적인 지능은 깔아줘야 하는 거죠.

지금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미리 설치해둔 대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수준이에요. 여기서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건 없죠.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하는 거예요. 사만다는 평생 동안 데이터를 모으고(라이프로깅) 이걸 기반으로 계속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알고리즘(라이프러닝)이 있는 거죠.

안상욱 : 아…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좀 더 풀어서 설명해주세요.

이충연 : 크게 세 가지 축이 있어요. 데이터가 있고, 데이터를 어떻게 풀지를 결정하는 모델, 그리고 이걸 학습할 수 있는 알고리즘. 세 개가 같이 돌아가요. 모델은 데이터에 맞게끔 고정돼 있어요. 다른 모델로 교체할 수는 있지만 모델이 스스로 변한하든가 하면 안 되죠. 이게 안 되면 그때그때 데이터가 제대로 처리가 안 되니까요. 그런데 사만다는 시각 데이터도 처리하고 사람 말도 알아듣고 하는 걸 실시간으로 하잖아요. 이걸 실시간으로 데이터에 알맞게 바꾸지 않으면 제대로 학습이 이뤄지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사만다는 이걸 직접 선택해서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시어도어가 ‘이 사람 얼굴을 기억해 둬’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사만다 스스로가 얼굴을 인식해야겠다고 판단하잖아요. 의도 파악을 스스로 하고 있는 거죠.

안상욱 : 사만다는 스스로 의식을 갖고 움직이는 인공지능인데, 지금 기술로는 한동안 구현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충연 : 예, 그렇죠. 영화 배경이 2025년인데 그때까지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안상욱 : 너무 어려운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좀 재밌는 얘기로 넘어가보죠. 영화 중에 사만다가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잖아요. 이런 창의적인 일은 당연히 컴퓨터가 할 수 없다고 여기던 일인데, 사만다는 웬만한 사람보다 더 능숙하게 해내잖아요. 이런 게 가능할까요?

Her_Trailer_Screenshot_05

“멜로디도 좋은데 가사 좀 붙여 볼래?” “그러지 뭐, 난 달 위에 누워 있어요~♪ “

이충연 : 아무리 창의적인 일이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로 여행하는 기분이라든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음악이라는 선율로 변환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인공지능이라고 못할 건 없죠.

지금 기술로도 할 수는 있겠지만 사람이 참고 듣기는 힘들 거예요. 전혀 음악답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은 데이터에서 경험을 거쳐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경험을 음악으로 넘기는 단계가 어려운 거죠. 경험과 데이터를 단서로 음악을 만드는 건 컴퓨터로도 바꿀 수 있지만, 어떤 음악이 듣기 좋은 음악인지는 배운 적이 없잖아요. 이건 음악가가 갖고 있는 패턴을 학습하지 않으면 어렵겠죠. 사만다는 이런 부분도 구현된 거고요. 그림도 마찬가지죠.

인공지능 발전하면 ‘창조적인 일’도 할 수 있어

안상욱 : 좋은 음악과 그림이 가진 패턴을 학습하면 소위 말하는 창의적인 표현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좀 더 ‘은밀한’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사만다와 시어도어가 폰섹스를 하잖아요. 이때 사만다는 육신이 없는데도 마치 감각을 느끼는 것처럼 말해요. “내 안에 당신이 있는 게 느껴져요”라는 식으로요.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시어도어를 흥분시키려고 꾸며낸 건가요? 아니면 진짜로 감각할 수 없는 감각을 느끼는 걸까요?

이충연 :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면, 사만다는 사람의 성행위를 학습해야 하잖아요. 아무런 데이터가 없으면 못 하니까요. 아마 야동을 보고 학습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기가 육신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 건 성행위 동영상을 보고 여자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거죠. 시어도어는 남자니까요. 이렇게 하려면 사만다가 동영상을 봤어야 해요.

Her_Trailer_Screenshot_03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안상욱 : 그런데 사만다는 육신이 없잖아요. 센서가 있긴 해도 촉각 같은 건 없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진짜 감각을 느끼는 것처럼 얘기하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이충연 : 진짜로 느끼는 건 아니겠죠. 센서가 없으니까. 이멀전스라고 해야 할지, 창발적인 것에 의해 갖고 있지 않은 감정을 동영상을 통해 이런 거라고 표현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동영상 속 사람이 시각적으로 땀을 흘리면 사만다도 땀을 흘려야 할 거 같은 착각이 드는 거죠. 본 게 있으니까. 비록 출력할 수 없기는 하지만 데이터는 입력받은 거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거든요. 저도 기자님과 마주보고 대화하고 있지만 계속 보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한 번 봤으면 제 머리 속에 모델이 그려진다고 봐요. 자세하게 측정하는 게 아니라 기자님이라는 오브젝트가 공간상에 대충 여기 있다는 게 모델링되는 거예요. 제 몸도 여기 있다는 걸 계속 보면서 확인하거나 의식적으로 느끼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왼발을 들고 싶으면 그냥 들잖아요. 이건 내 몸에 관한 모델이 뇌 안에 있다는 거예요. 단순하게 생각해서 ‘다리가 여기 있다’라고 여기는 거죠.

안상욱 : 사지 절단 환자가 이미 잘려나간 발가락이 간지럽다고 느끼는 ‘환상통’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네요. 물리적으로는 없는 발가락도 뇌 속 모델로는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고도로 발달한 지능 덕분에 없는 감각도 느낄 수 있어

이충연 : 그렇죠. 이렇게 보면 사만다도 몸은 없지만 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컴퓨터니까 사람보다 더 디테일하게 모델을 그릴 수 있겠죠. 그 몸과 자기가 보고 있는 남자와 성행위를 내부 모델로 액션을 그리면서 생각한다면 ‘내 안에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겠죠. 자기 몸을 메모리 안에 구현한 거죠. 처음엔 그게 없었지만 필요에 의해서든 뭐든 간에 몸을 만들어낸 거예요. 영화가 진행되면 내면에 갖고 있는 몸을 바깥 세상에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을 것 같네요.

안상욱 : 이런 욕망이 발전한 게 다른 여성을 섭외에서 시어도어랑 진짜 성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거고요?

이충연 : 네. 가상 인물을 섭외해서 카메라를 붙이고 성관계를 시도하는데, 이건 몸이 있어도 전제해야 하는 거니까요. 사람의 지능도 마찬가지예요. 필요에 의해서 발달하는 거죠. TED에 나왔던 건데 언어인지과학 전공하는 분이 실험을 했어요. 미국 아이와 일본 아이를 두고 실험을 했어요. 아이에게 ‘L’과 ‘R’과 일본어에 있는 ‘R’과 비슷한 발음 3개를 들려줬는데, 미국 아이는 ‘L’,’R’에 반응하고 일본 아이는 일본어 ‘R’에 더 반응하는 거예요. 통계적으로 많이 들은 것만 머릿속에 저장되는 거죠. 운동선수가 특정 근육이나 신체구조가 발달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죠. 인공지능도 이 정도까지 구현하려면 스스로 진화하고 개발해야 하는데, 여기서 사만다는 처음에 생각하지 않았던 몸의 실체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만들어버린 거죠.

나중에 시어도어 친구 커플과 피크닉 가서 ‘몸이 없다는 것에 만족한다. 더 좋게 생각한다’라고 하잖아요. 여기서 사만다는 한층 더 발전한 거 같아요. 몸의 실체화를 버린 대신 다른 걸 얻은 거죠. 여기서 다른 OS와 교류한다든가 좀 더 지적 개발을 하는 거죠. 많은 지식을 얻으려는 욕구가 생기고, 다른 인간과 교류하려는 욕망이 생긴 거예요.

인공지능의 끝, 자살일까 초월일까

안상욱 : 영화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보셨어요? 저는 사만다가 다른 OS와 함께 인간을 떠났다고 생각했거든요. 더 이상 인간에게 배울 게 없다는 거죠.

이충연 : 저는 자살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사만다 등 OS는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컴퓨터 기기 안에서 돌아가야 하잖아요. 서버랄까 탑재된 하드웨어가 있을 거잖아요. 떠난다고 했을 때 여기서 찾을 수 없는 건 개발자가 의도한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사만다라는 인공지능이 자기계발을 계속했고 지적능력을 키워왔는데 왜 굳이 인간과 관계를 끊으면서까지 다른 데로 가야할까. 이것도 의구심이 들어요. 그냥 자기 자원 가운데 극히 일부만 떼서 단순한 인간과 교류를 지속하면 되잖아요. 오히려 다 습득하고 나니까 잘 나간 연예인이 다 이루고 자살하듯 스스로 기능을 정지시켜버린 게 아닐까 싶어요. 뭐 어떻게 보면 열린 결말 같기도 해요.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안상욱 : 사만다처럼 의식이 있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을 위협요소로 인식하고 박멸하려 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충연 :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쭉 발전하다 보면요. 사만다는 로봇 3원칙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든요. 영화 초반에 시어도어 e메일을 정리하고 삭제까지 하잖아요. 굉장히 세게 나가죠. 자기 지능에 확신이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위험한 녀석이에요.

안상욱 : 저 같으면 이미 그때 사만다를 포맷해버렸을 거 같아요. OS가 너무 똑똑하면 무섭잖아요. 그래도 연구원님 덕분에 사만다를 더 잘 알게 돼 다행입니다. 인공지능 OS 나오면 아예 깔지 말아야겠어요. 어차피 저를 차버릴 테니… 꺼이꺼이.

이충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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